박정희즘한국정치사를 정권의 성격으로 분류하여 보면
이승만의 친미독재→ 4.,19시민봉기에 의한 제2공화국→박정희 군사쿠데타에 의한 3공화국→박정희의 국민동원형 군부권위주의지배에 의한 4공화국→전두환.노태우 유사군부쿠데타세력의 지배에 의한 5공화국과 6공화국→김영삼에 의한 민주적 권위주의지배→김대중에 의한 제도권민주세력지배→노무현에 의한 느슨한 제도권개혁세력지배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후안 도밍고 페론 처럼 군사 쿠데타 과정을 거치며 기존의 부패한 정권과 달리 농민과 서민을 생각하며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는 강력한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박정희가 최고회의 의장에 뒤이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19년 동안 한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몇 십 년, 몇 백 년이 걸렸던 산업화의 과정을 그는 단기간 내에 압축적으로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가 단순하지 않은 것은 그가 재임중 달성한 이러한 비약적인 경제성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 과거 우리와 비슷한 경제성장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에서는 박정희의 인기가 대단히 높다고 한다.
1960년 10월 미국에서 발간된 미국 Foreign Affairs는 당시 한국의 경제사정을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의 1인당 GNP는 100달러 이하, 전력 산출량은 멕시코의 1/6이며 수출은 200만 달러에 불과한데 수입은 2억 달러다. 이래서는 한국의 경제 회생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계획의 가장 실망적인 국면은 원조계획이 생활수준을 지속할 만한 성장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묘사했다. 이 것이 박정희 집권 당시의 경제 사정이다. 총 국가 예산의 52%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한 상태였다. 그러나 집원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 연평균 9.67%의 고도성장, 매출 445배 향상, 집권 4년만에 수출 1억 4천만 달러 돌파, 1970년대에 10억 달러 돌파를 이룩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다른 선진국들이 100 혹은 200년에 걸쳐 이룩한 것을 고작 20년만에 완성했다고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불렀다.
물론 그 이면에는 경제개발계획에 충당할 자금이 긴급히 필요해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청구권과 경제 협력의 명분으로 무상 3억 달러, 재정차관 2억 달러, 민간차관 3억 달러, 도합 8억달러의 돈으로 이 문제를 마무리짓는 굴욕적 외교를 감행했으며 월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했다. 월남파병은 1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는 '월남특수(特需)'로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었으나 1만 2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월남 파병 역시 그 명분적인 측면에서 볼 때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되지 못했다. 한일회담이나 월남 파병과 관련하여 이제는 정신대 문제나 고엽제(枯葉劑) 후유증 같은 일만이 우리에게 남겨졌지만, 당시 급속히 추진된 외향적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민족적 자존심의 상실과 남북 관계의 악화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이 뒤따랐던 것이다. 다른 한편, 경제성장이 초래한 더욱 커다란 문제점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계급적, 지역적 분열을 가속화시켰다는 점이다. 1970년 11월 어느 날 서울 청계천에서 백주 대낮에 한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바로 전태일(全泰壹)의 분신이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하고 당연한 요구였다. 그러나 1960년대 경제성장 10년의 뒤안에는 10대의 어린 나이로 하루 14시간 이상씩 열악한 근로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생계비의 3분의 1도 안 되는 그런 희생들이 있었다.
박정희는 상상조차 어려웠을 경제 성장을 이룩했으나 장기 독재의 길을 걷게 된다. 1967년 5월 제 6대 대통령 선거에서 고도성장의 업적에 힘입어 박정 희는 어렵지 않게 다시 당선되었으나 같은 해 6월에 치러진 제 7대 국회의원 선거는 극도의 혼탁상을 면치 못했다. 여당인 공화당이 3선 개헌에 필요한 국회의석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 광범위한 부정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1969년에 들어 3선 개헌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결국 9월 14일 개헌·지지서명을 했던 122명의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던 국회 본회의장을 피해 국회 3별관에서 개헌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3선 개헌안이 확정됨에 따라 박정희는 1971년 4월 제7대 대선에서 또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즉 그는 1960년대에 이룩한 고도성장을 인질로 해서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을 위해 장기 독재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대선의 마지막 장충단 공원 유세에서 박정희는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뽑아줄 것'을 눈물로써 호소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눈물어린 호소는 얼마 가지 않아 거짓임이 점차 드러났다. 당시 닉슨 독트린 (Nixon doctrine)으로 인해 야기된 데탕트의 물결 속에서 남북 대화가 진척되는 가운데, 박정희는 영구 독재 체제인 유신 체제의 수립을 비밀리에 진척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대통령 특별 선언에 의해 현행 헌법의 효력을 일부 중단, 유신체제 등장을 위한 비상조치를 취했다. 유신 독재하의 사회는 남발되는 긴급조치와 빈틈없는 통제로 꽉 짜여진 숨막히는 사회였다. 그런만큼 그 틈새마다 민주화의 저항이 치받아 올라올 수밖에 없는 그러한 사회이기도 했다. 독재와 민주화의 대립은 그 충돌을 거듭할 때마다 더욱 거칠고 적나라해졌다. 백만인 개헌청원운동, 긴급조치 1.2호, 민청학련 사건 및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 서울대 김상진의 할복자살, 긴급조치 9호, 민주구국선언, YH사건, 김영삼 총재 직무정지 가처분과 제명 조치, 부마항쟁 등등. 그 중에서 박 정권이 취한 가장 야만적인 조치는 민청학련의 ‘국가변란기도'를 공산주의자들의 사주와 연관시키기 위해 조작한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관련자 8명을 대법원의 기각 결정 하루 만에 사형시켜 버린 일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장기 독재의 길에서 갈 데까지 간 박정희는 민주화 운동의 대응을 둘러싼 내분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 숨을 거두었다. 김재규의 표현대로 그것은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총탄이었다.
그럼에도 박정희 전 대톨령은 우리 나라 국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각종 1위를 놓치지 않는다.
(최근 조사 결과는 별로 없으나 검색하고 정리하기 귀찮아서 찾은 자료로만 흠;)
1위 내용 보기
98. 7. 15 조선일보, 한국갤럽 공동조사 ▶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대한민국 50년의 50대 인물」〈정치분야〉
· 1위 : 박정희 (66.9%)
· 2위 : 김 구 (26.3%)
교수 50인이 뽑은「50대 인물」조사에서는
· 1위 : 김 구
· 2위 : 박정희
· 3위 : 정주영
98. 8. 16 미국 시사주간지「타임지」조사 ▶「20C 아시아 인물 20걸」
·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박정희” 선정
일본 6명, 중국 3명, 인도 3명 등
99. 10. 21 KBS 길중섭의 쟁점토론(ARS) ▶ 「박대통령 재평가」여론조사
· 박정희 지지율 79.9%
99. 11. 30 뉴스피플, 한길리서치 공동조사 ▶「20세기 한국을 움직인 사람들」(전문가 500인 대상)
※ 20세기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친 인물 100명 선정 〈정치·사회분야〉
· 1위 : 박정희 (95.0%)
99. 12. 7 월간중앙(12월호) ▶「한국 최고 인물 10선」조사
· 1위 : 박정희 (50.3%)
· 2위 : 김 구 (16.8%)
99. 12 월간조선(12월호) ▶「금세기 대한민국 최고 인물은 누구일까」조사
· 1위 : 박정희 (52.1%)
· 2위 : 김 구 (16.6%)
· 3위 : 김대중 (10.7%)
99. 12. 3 한겨레신문 ▶ 20세기 20대 뉴스「한국의 인물」조사
· 1위 : 박정희
· 2위 : 김 구
· 3위 : 이승만
2001. 7월 월간 신동아와 국민제안센터 보트코리아 공동조사 ▶ 대통령 역할을 가장 잘한 대통령은? 전국 E.mail 조사 결과 (교수 13,314명 대상)
· 1위 : 박정희 대통령(58.4%)
· 2위 : 김대중 〃(22.9%)
· 3위 : 김영삼 〃(7.2%)
· 4위 : 이승만 〃(3.5%)
· 5위 : 전두환 〃(3.3%)
2001.12.26 국정홍보처
※ 2001. 12. 28 중앙일보, 연합뉴스 보도 ▶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성인 4,500명 대상)
· 1위 : 박정희 (21,1%)
· 2위 : 세종대왕 (19,8%)
· 3위 : 이순신 (12,7%)
· 4위 : 김 구 (10,5%)
2002. 1. 23 ~ 2. 14 월간조선(3월호) ▶ 「한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 인터넷 여론조사 (15,295명 대상)
· 1위 : 박정희 4,285명(28%)
· 2위 : 광개토대왕 2,257명(14%)
· 3위 : 세종대왕 1,93명 (11%)
· 4위 : 이순신 1,303명 (8%)
· 5위 : 김대중 807명 (5%)
2002. 2. 6 월간중앙, “폴앤폴” 공동조사 ▶「역대 대통령 국정운영 능력 평가」 조사
· 종합 평점 최고 : 박정희
1. 국민을 위한 정치평가 · 1위 : 박정희 (56.0%) · 2위 : 김대중 (20.0%)
2. 국정 운영능력 평가 · 1위 : 박정희 (55.4%) · 2위 : 김대중 (15.7%)
3. 국민에게 희망을 준 대통령 · 1위 : 박정희 (60.6%) · 2위 : 김대중 (18.4%)
4. 경제정책 평가 · 1위 : 박정희 (62.0%) · 2위 : 김대중 (15.6%)
5. 역사발전에 대한 긍정적 기여 · 1위 : 박정희 (52.3%) · 2위 : 김대중 (20.2%)
6. 가장 책임감 있는 대통령 · 1위 : 박정희 (54.7%) · 2위 : 김대중 (18.9%)
7. 과감한 의사결정 · 1위 : 박정희 (54.5%) · 2위 : 김대중 (14.5%)
8. 인재기용 평가 · 1위 : 박정희 (30.1%) · 2위 : 김대중 (17.4%)
2002. 2. 18 월간중앙과 폴앤폴 공동조사
1. 전현직 대통령이 올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경우 당선자 · 1위 : 박정희 (46.4%) · 2위 : 김대중 (16.7%)
2. 차 한잔 마시며 대화하고 싶은 친근감 있는 대통령· 1위 : 박정희(37%)· 2위 : 김대중(26.9%)
3. 대통령 정책평가
· 박정희
: 위민(爲民)정치, 국정운영 능력, 경제정책, 과감한 의사결정 분야에서 각각 1위
· 김대중
: 남북관계 개선, 국민의견 존중, 민주주의 기여도에서 각각 1위
2002. 6. 27 ~ 7. 9 한국갤럽 ▶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전국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 대상)
· 1위 : 박정희(20.1%)
· 2위 : 세종대왕(16.0%)
· 3위 : 이순신(15.3%)
· 4위 : 김 구(7.9%)
· 5위 : 유관순(2.5%)
2002. 8. 26 ~ 27 한국 대통령 평가위원회 ▶ 역대대통령 평가조사 결과 (해당분야 전문학자 320명)
1. 업무수행능력
· 1위 : 박정희(63.56%)
· 2위 : 김대중(58.64%)
· 3위 : 김영삼(50.96%)
· 4위 : 이승만(49.40%)
· 5위 : 전두환(49.30%)
2. 업적수행분야
· 1위 : 박정희(66.58%)
· 2위 : 김대중(65.08%)
· 3위 : 전두환(56.72%)
· 4위 : 김영삼(55.16%)
· 5위 : 노태우(52.84%)
3. 자질분야
· 1위 : 박정희(62.7%)
· 2위 : 김대중(58.45%)
· 3위 : 이승만(56.95%)
· 4위 : 김영삼(56.04%)
· 5위 : 전두환(51.90%)
2002. 10월 서울대 교내신문 “대학신문” ▶ 역대 최고의 대통령은 누구인가? (재학생 1,687명 대상)
· 1위 : 박정희(46.0%)
· 2위 : 김대중
· 3위 : 이승만
2003. 2. 15 코리아 리서치 ▶ 현정부를 포함하여 어느 정부가 잘 했느냐 ? (전국 성인 남녀 1,037명 대상)
· 1위 : 박정희 정부(51.1%)
· 2위 : 김대중 〃 (21.5%)
· 3위 : 전두환; 〃 (9.5%)
· 4위 : 김영삼 〃 (2.0%)
· 5위 : 노태우 〃 (0.5%)
2003. 7월 월간 현대경영 조사 ▶ 국내 100대 기업 비서들이 본 CEO 인물 및 조건 (61개 사 82명)
1. 국가CEO 중 가장 존경하고 모시고 싶은 인물
· 1위 : 박정희 대통령 (68 %)
· 2위 : 김대중 〃 (18 %)
· 3위 : 노무현 〃 (10 %)
2003. 9. 22 ~ 11. 14 월간조선 ▶ 5천년 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총 3,937명)
· 박 정 희 : 1,943명 (49.4%)
· 세종대왕 : 393명 (10.0%)
· 광개토대왕 : 290명 (7.4%)
· 이 순 신 : 229명 (5.8%)
· 단 군 : 129명 (3.3%)
2003. 11. 3 ~ 8 동아일보, 아이클릭 공동조사 ▶ 가장 마음에 드는 대통령? (6대도시 30, 40대 남성 500명)
· 1위 : 박정희 (51.4 %)
· 2위 : 없 음 (20.6 %)
· 3위 : 노무현 (15.6 %)
· 4위 : 김대중 ( 6.4 %)
· 5위 : 전두환 ( 4.2 %)
2004. 01. 07 ~ 25 영화채널 ‘캐치온’과 영화전문 사이트 ‘엔키노’ 조사 ▶ 역대 대통령 중 누가 정치를 잘 했으냐? (네티즌 5,883명)
· 1위 : 박정희 대통령(56.7%)
· 2위 : 김대중 대통령(29.0%)
· 3위 : 이승만 대통령(3.8%)
· 4위 : 윤보선, 전두환 대통령(3.3%)
· 5위 : 최규하 대통령(1.8%)
· 6위 : 김영삼 대통령(1.3%)
· 7위 : 노태우 대통령(0.8%)
2004. 2. 24 am7과 (주)아이클릭 ▶ 현재 대통령을 포함하여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대통령
(전국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 1위 : 박정희(41.7%)
· 2위 : 없음(28.9%)
· 3위 : 노무현(12.3%)
· 4위 : 김대중(11.1%)
· 5위 : 전두환(2.7%)
· 6위 : 이승만(1.2%)
· 7위 : 김영삼(0.9%)
2004. 3. 22 조선일보 산업부 ▶ 역대 정부 중 가장 기업하기 좋았던 시절은?
(조사 대상 :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 변대규 휴맥스 사장 등 국내 제조업, 금융업, 벤처업계의 대표적인 CEO 55명)
· 1위 : 박정희 대통령 시절(52.7%)
2004. 5. 16 한겨레신문 ▶ 가장 좋아하는 국가지도자는?
· 1위 : 박정희 (50.0%)
· 2위 : 김구(12.3%)
· 3위 : 노무현(11.6%)
· 4위 : 김대중(8.6%)
· 5위 : 권영길(1.3%)
2004. 5. 21 ~5. 24 MBC-TV ▶ 이 시대 각 분야별 영웅은? (네티즌 1,825명)
정치 분야
· 1위 : 박정희 888명(49%)
· 2위 : 노무현 443명(24%)
· 3위 : 김대중 388명(21%)
2004. 5. 13 ~5. 29 한국갤럽 ▶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은? (15세 이상 1,728명 참여)
· 1위 : 박정희 前 대통령(47.9%)
· 2위 : 김대중 前 대통령(14.3%)
· 3위 : 노무현 대통령(6.7%)
· 4위 : 전두환 前 대통령(1.7%)
· 5위 : 이승만 前 대통령(1.0%)
· 6위 : 김영삼 前 대통령(1.0%)
최근 경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도 '경제 대통령' CEO형 이명박이 당선되었고 우리나라 국민들 역시 경제 호황을 기대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혹자는 박 전 대통령의 비 민주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간혹 친일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친일 부분 외에 분명히 그는 민주적인 대통령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독재와 탄압으로 인해 잠재되어 있던, 무지해서 몰랐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붉어져 나온 것만은 확실하다. 많은 이들이 박정희 정권을 그리워 하는 것은 강력한 카리스마나 단순한 경제성장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 대통령은 자꾸만 박정희 따라잡기, 불도저식 정책을 선보이려고 하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광우병 쇠고기에 차팔아서 외자 유치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라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랑받았던,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이유는 그 시대에 적절한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60년대 그 어려웠던 시절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사람을 기계처럼 일시키고 밤엔 통행금지를 내리고 파병을 해서라도 국민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먹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절박함과 맞닿아서 지지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들이 무지하지도 단순한 경제성장만을 원하지도 않기 때문에 생각의 차이로 불이 붙은 거라 생각한다. 조금 핀트가 어긋났지만 어쨌든 박정희도 어려운 국가 환경에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이중적인 태도로 국민들의 사랑과 미움을 사며 장기 집권했던 페로니즘과 비슷해 박정희즘이라 불린다.
참고
http://cafe.naver.com/sfak/339 권오성(한국정치협의회)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4&eid=W6718KhsGAdPnjECLxvGAOIXpfeAW6iJ&qb=tOvF67fJIDHApw==&pid=faWacloQsCZssaasDEGsss--197497&sid=SFskm9YeW0gAAEGSG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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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 스킨은 사이드바가 없어서 난관에 봉착했다. 천재들에게 부탁 좀 해야겠다 ㅠ_ㅠ
2008/10/25 02:09 [ ADDR : EDIT/ DEL : REPLY ]ㅋㅋ 시험은 끝난 것이앙?
2008/10/27 01:01 [ ADDR : EDIT/ DEL : REPLY ]나름 블로그 업댓 신선한뎁?ㅋㅋ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었길래 술 사달란 거야?
하늘이가 조만간 보자구 연락왔는데
겸사겸사 또 보쟈그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