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와궤변사이'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8/10/25 블로그 위젯 (2)
  2. 2008/07/09 Peter Senge 학습이론
  3. 2008/06/20 우리나라의 포퓰리즘 ② 박정희즘 (1)
  4. 2008/06/20 우리나라의 포퓰리즘 ① 신개발주의
  5. 2008/06/20 Don't Cry For Me Argentina [페로니즘]
  6. 2008/06/20 포퓰리즘
  7. 2008/05/02 호칭이라는 것
  8. 2008/04/26 C2 안뇽 )/
  9. 2008/04/25 긍정질문과 부정질문 (5)
  10. 2008/04/23 나의 중국 나의 티베트 (2)
논리와궤변사이2008/10/25 01:53


게으름으로 인해 오래도록 포스팅을 안했는데,
다시 블로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 여기저기 다닌 맛집과 새로운 곳을 평하는 것도 올려야징♪

지인이자 카운셀러인 수영오빠 블로그 마수영의 Sexy Life에 갔다가
블로그에 달린 포츈 쿠키를 봤다.

클릭 각 단계별로 붙인 사진 =)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내 블로그에도 추가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싸이월드에서 강력히 밀고 있는 싸이월드 블로그(과거 C2)에도 자유롭게 위젯을 추가할 수 있다.
위자드닷컴에서도 이러한 위젯들을 다양하게 만들고 있고 최근에 위젯팩토리도 런칭했다.
참고로, 위자드닷컴의 위젯 중 'Smart Boy'라고 소년 캐릭터를 아기 때부터 성장시키는 영어 공부 위젯이 있다.
월스트리트인스티튜트와 제휴해서 만든 이 위젯이 세계 최대 SNS 서비스 마이스페이스에서 주최한 대회 한국 1등을 했다.

지금 보니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다양한 컨텐츠를 배치하는 위젯은 위자드닷컴의 공유센터 오즈: 마이젯 에 자세히 나와있다.
나도 아직은 안해봤지만, 이용방법이 상세히 나와있으니(동영상 강의도 있음) 이곳에서 보고 설치하면 되겠다!

레쯔고~!

 

Posted by 캉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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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내 스킨은 사이드바가 없어서 난관에 봉착했다. 천재들에게 부탁 좀 해야겠다 ㅠ_ㅠ

    2008/10/25 02:09 [ ADDR : EDIT/ DEL : REPLY ]
  2. 마수영

    ㅋㅋ 시험은 끝난 것이앙?
    나름 블로그 업댓 신선한뎁?ㅋㅋ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었길래 술 사달란 거야?
    하늘이가 조만간 보자구 연락왔는데
    겸사겸사 또 보쟈그 ^ㅡ^

    2008/10/27 01:01 [ ADDR : EDIT/ DEL : REPLY ]

논리와궤변사이2008/07/09 14:17
Management Concepts사의 과정들 중 많은 수가 Peter M. Senge의 "Wheel of Learning"이론을 바탕으로 설계된 실천적 학습을 따른다. 피터 센게의 학습 이론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했으나 그의 대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학습 조직에 대한 자료만 나온다.


(1) 학습조직의 정의

  Peter Senge는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을 전통적인 조직과 구별하여 그 성격과 요건을 규정하였다. 그의 이론은 개방체제모형과 자기실현적 인간관을 전제적 이론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외재적 조건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교호작용 양태를 더 중요시한다. 조직은 사람들의 생각과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Senge가 말한 학습조직이란 ⅰ) 조직구성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과를 창출할 능력을 지속적으로 신장할 것, ⅱ) 새롭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육성될 것, ⅲ) 공동의 갈망이 자유롭게 분출될 수 있게 할 것, ⅳ) 조직구성원들이 함께 배우는 방법을 계속적으로 배울 것 등의 조건이 구비된 조직이다.



(2) 다섯가지 수련(제5의 수련)

  Senge는 학습조직의 성립에 필요한 다섯 가지 수련(훈련·계율·과정 : disciplines)을 제시하였다. 이들 수련은 학습조직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요건이며 방법이고 기술(component technologies)이다. 서로 수렴해 가는 다섯 가지의 새로운 기술 또는 수련이 함께 학습조직을 탄생시킨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새롭게 사고하고 교호작용하는 방법을 깨닫고 이를 행동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려는 다섯 가지 수련은 다음과 같다.

   1) 자기완성(personal mastery) : 이에 관한 수련은 생애와 일에 관한 개인의 접근방법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각 개인은 원하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는 자기역량의 확대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조직은 그 구성원들이 선택한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2) 사고의 틀(mental models) : 이에 관한 수련은 뇌리에 깊이 박힌 전제 또는 정신적 이미지를 성찰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가다듬어야 한다.

   3) 공동의 비전(shared vision) : 이에 관한 수련은 조직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원칙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4) 집단적 학습(team learning) : 이에 관한 수련은 집단구성원들이 진정한 대화와 집단적인 사고의 과정을 통해 개인적 능력의 합계를 능가하는 지혜와 능력을 구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5) 시스템 중심의 사고(systems thinking) : 이에 관한 수련은 체제를 구성하는 여러 연관 요인들을 통합적인 이론체계 또는 실천체계로 융합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통합적 훈련이다.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결정하는 요인들과 그들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훈련,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출처: KASPA 김종규 행정학 아카데미 http://www.kaspa.co.kr/html/databoard/news_view.asp?idx=277


그래서 KMA 교수님께 여쭈어 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Wheel of Learning"
성찰→연관→결정→행동 과정이 순환되는 것으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개발하고(기존의 대안들 중 알맞을 것과 연관짓는 것) 적절한 해결책을 선택해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또 행동을 계속 하다 보면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고 또 위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는 실천적 학습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에 문제와 해결책을 연관 짓는(해결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Systems Thinking이 일어나는 데 이 Systems Thinking 역시 피터 센게의 대표적 이론으로 문제를 일부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발생하게 된 총체적인 원인과 연관지어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는 생각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시스템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The unleashed power of the atom has changed everything save our modes of thinking, and we thus drift toward unparalleled catastrophes.
- Albert Einstein

The human race has not yet started to think.
- Edward De Bono

출처: http://www.sys-think.com/


시스템적 사고는 문제와 연관된 복잡한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으로 요즘과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general manager가 되기 위해 꼭 갖춰야할 competency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캉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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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궤변사이2008/06/20 15:25
박정희즘

한국정치사를 정권의 성격으로 분류하여 보면
이승만의 친미독재→ 4.,19시민봉기에 의한 제2공화국→박정희 군사쿠데타에 의한 3공화국→박정희의 국민동원형 군부권위주의지배에 의한 4공화국→전두환.노태우 유사군부쿠데타세력의 지배에 의한 5공화국과 6공화국→김영삼에 의한 민주적 권위주의지배→김대중에 의한 제도권민주세력지배→노무현에 의한 느슨한 제도권개혁세력지배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후안 도밍고 페론 처럼 군사 쿠데타 과정을 거치며 기존의 부패한 정권과 달리 농민과 서민을 생각하며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는 강력한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박정희가 최고회의 의장에 뒤이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19년 동안 한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몇 십 년, 몇 백 년이 걸렸던 산업화의 과정을 그는 단기간 내에 압축적으로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가 단순하지 않은 것은 그가 재임중 달성한 이러한 비약적인 경제성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 과거 우리와 비슷한 경제성장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에서는 박정희의 인기가 대단히 높다고 한다.

1960년 10월 미국에서 발간된 미국 Foreign Affairs는 당시 한국의 경제사정을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의 1인당 GNP는 100달러 이하, 전력 산출량은 멕시코의 1/6이며 수출은 200만 달러에 불과한데 수입은 2억 달러다. 이래서는 한국의 경제 회생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계획의 가장 실망적인 국면은 원조계획이 생활수준을 지속할 만한 성장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묘사했다. 이 것이 박정희 집권 당시의 경제 사정이다. 총 국가 예산의 52%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한 상태였다. 그러나 집원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 연평균 9.67%의 고도성장, 매출 445배 향상, 집권 4년만에 수출 1억 4천만 달러 돌파, 1970년대에 10억 달러 돌파를 이룩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다른 선진국들이 100 혹은 200년에 걸쳐 이룩한 것을 고작 20년만에 완성했다고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불렀다.
물론 그 이면에는 경제개발계획에 충당할 자금이 긴급히 필요해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청구권과 경제 협력의 명분으로 무상 3억 달러, 재정차관 2억 달러, 민간차관 3억 달러, 도합 8억달러의 돈으로 이 문제를 마무리짓는 굴욕적 외교를 감행했으며 월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했다. 월남파병은 1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는 '월남특수(特需)'로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었으나 1만 2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월남 파병 역시 그 명분적인 측면에서 볼 때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되지 못했다. 한일회담이나 월남 파병과 관련하여 이제는 정신대 문제나 고엽제(枯葉劑) 후유증 같은 일만이 우리에게 남겨졌지만, 당시 급속히 추진된 외향적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민족적 자존심의 상실과 남북 관계의 악화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이 뒤따랐던 것이다. 다른 한편, 경제성장이 초래한 더욱 커다란 문제점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계급적, 지역적 분열을 가속화시켰다는 점이다. 1970년 11월 어느 날 서울 청계천에서 백주 대낮에 한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바로 전태일(全泰壹)의 분신이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하고 당연한 요구였다. 그러나 1960년대 경제성장 10년의 뒤안에는 10대의 어린 나이로 하루 14시간 이상씩 열악한 근로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생계비의 3분의 1도 안 되는 그런 희생들이 있었다.

박정희는 상상조차 어려웠을 경제 성장을 이룩했으나 장기 독재의 길을 걷게 된다. 1967년 5월 제 6대 대통령 선거에서 고도성장의 업적에 힘입어 박정 희는 어렵지 않게 다시 당선되었으나 같은 해 6월에 치러진 제 7대 국회의원 선거는 극도의 혼탁상을 면치 못했다. 여당인 공화당이 3선 개헌에 필요한 국회의석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 광범위한 부정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1969년에 들어 3선 개헌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결국 9월 14일 개헌·지지서명을 했던 122명의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던 국회 본회의장을 피해 국회 3별관에서 개헌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3선 개헌안이 확정됨에 따라 박정희는 1971년 4월 제7대 대선에서 또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즉 그는 1960년대에 이룩한 고도성장을 인질로 해서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을 위해 장기 독재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대선의 마지막 장충단 공원 유세에서 박정희는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뽑아줄 것'을 눈물로써 호소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눈물어린 호소는 얼마 가지 않아 거짓임이 점차 드러났다. 당시 닉슨 독트린 (Nixon doctrine)으로 인해 야기된 데탕트의 물결 속에서 남북 대화가 진척되는 가운데, 박정희는 영구 독재 체제인 유신 체제의 수립을 비밀리에 진척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대통령 특별 선언에 의해 현행 헌법의 효력을 일부 중단, 유신체제 등장을 위한 비상조치를 취했다. 유신 독재하의 사회는 남발되는 긴급조치와 빈틈없는 통제로 꽉 짜여진 숨막히는 사회였다. 그런만큼 그 틈새마다 민주화의 저항이 치받아 올라올 수밖에 없는 그러한 사회이기도 했다. 독재와 민주화의 대립은 그 충돌을 거듭할 때마다 더욱 거칠고 적나라해졌다. 백만인 개헌청원운동, 긴급조치 1.2호, 민청학련 사건 및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 서울대 김상진의 할복자살, 긴급조치 9호, 민주구국선언, YH사건, 김영삼 총재 직무정지 가처분과 제명 조치, 부마항쟁 등등. 그 중에서 박 정권이 취한 가장 야만적인 조치는 민청학련의 ‘국가변란기도'를 공산주의자들의 사주와 연관시키기 위해 조작한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관련자 8명을 대법원의 기각 결정 하루 만에 사형시켜 버린 일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장기 독재의 길에서 갈 데까지 간 박정희는 민주화 운동의 대응을 둘러싼 내분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 숨을 거두었다. 김재규의 표현대로 그것은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총탄이었다.

그럼에도 박정희 전 대톨령은 우리 나라 국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각종 1위를 놓치지 않는다.
(최근 조사 결과는 별로 없으나 검색하고 정리하기 귀찮아서 찾은 자료로만 흠;)

1위 내용 보기


최근 경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도 '경제 대통령' CEO형 이명박이 당선되었고 우리나라 국민들 역시 경제 호황을 기대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혹자는 박 전 대통령의 비 민주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간혹 친일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친일 부분 외에 분명히 그는 민주적인 대통령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독재와 탄압으로 인해 잠재되어 있던, 무지해서 몰랐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붉어져 나온 것만은 확실하다. 많은 이들이 박정희 정권을 그리워 하는 것은 강력한 카리스마나 단순한 경제성장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 대통령은 자꾸만 박정희 따라잡기, 불도저식 정책을 선보이려고 하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광우병 쇠고기에 차팔아서 외자 유치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라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랑받았던,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이유는 그 시대에 적절한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60년대 그 어려웠던 시절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사람을 기계처럼 일시키고 밤엔 통행금지를 내리고 파병을 해서라도 국민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먹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절박함과 맞닿아서 지지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들이 무지하지도 단순한 경제성장만을 원하지도 않기 때문에 생각의 차이로 불이 붙은 거라 생각한다. 조금 핀트가 어긋났지만 어쨌든 박정희도 어려운 국가 환경에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이중적인 태도로 국민들의 사랑과 미움을 사며 장기 집권했던 페로니즘과 비슷해 박정희즘이라 불린다.

참고
http://cafe.naver.com/sfak/339 권오성(한국정치협의회)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4&eid=W6718KhsGAdPnjECLxvGAOIXpfeAW6iJ&qb=tOvF67fJIDHApw==&pid=faWacloQsCZssaasDEGsss--197497&sid=SFskm9YeW0gAAEGSG2A
Posted by 캉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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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캉늄은 고율이 스카웃한다. 우훗훗;

    2008/06/20 23:26 [ ADDR : EDIT/ DEL : REPLY ]

논리와궤변사이2008/06/20 15:06

신개발주의와 포퓰리즘

이승만 정권이 전후의 국민 불만 해소와 정권 유지 차원에서 선심형 소비 및 분배 정책들을 폄으로서 일시적 현상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포퓰리즘적 현상이 정치분야에서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한국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포퓰리즘은, 서구정치에서 볼 수 있었던 진보적 성향의 대중주의나 인민주의의 의미가 아니라, 정권의 취약성을 만회하기 위해 국민들의 환심을 사는 인기 중심의 정책을 펴는 현상을 의미할 뿐이다. 포퓰리즘이 한국에서 인기영합주의란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주요 언론들은 개혁정책의 많은 부분이 포퓰리즘적이라고 논평하고 있다. ‘균형·분배·민주’ 등의 진보적·개혁적 이념을 표방하는 정책들을 펴고자 했지만 소수파 정권으로 한계를 직면하자, 국민참여와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현실 타협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노무현정부 하에서 포퓰리즘이 나타나게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포퓰리즘은 대규모 개발을 전제하는 국책사업과 관련된 부분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가령, 새만금간척사업, 경인운하건설, 금정산·천정산 터널공사, 북한산터널공사, 방폐장건설, 등과 같은 국책사업들 이전 정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급조된 선거공약으로, 혹은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운 지방자치단체의 비민주적 정책결정을 통해 제시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 국책사업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강한 표퓰리즘적 요소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적 국면에서 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해 국책사업들을 중단하거나 재검토하겠다는 선심형 약속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곤 한다. 후보시절 노무현대통령도 환경단체나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취임하면, 주요 국책사업들의 추진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사업타당성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 취임 후에는 어느 것 하나도 본래의 약속대로 중단하거나 재검토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경과하면서 정부는 사업 대부분을 재추진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거나 방향을 잡아 갔다. 여기에 바로 표퓰리즘적 정치의 요인이 작용했던 것이다.

대규모 개발을 전제하는 국책사업들에 대해선 지역환경이나 생태계를 심대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국민적인 우려가 있지만, 동시에 지역경제 진흥이나 성장에 적잖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도 있다. 따라서 추진여부가 논란이 되면 환경주의자와 개발주의자 간에 좁힐 수 없는 대립과 갈등이 나타난다. 실제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후 새만금 간척사업, 방폐장건설, 금정산·천정산터널공사 등과 같은 국책사업의 추진여부를 둘러싼 국민적 갈등이 재연하면서 나라 전체가 분열하는 듯 했다.

이는 소수파 정권으로 출범했던 노무현정부에 대해 심각한 도전이었고, 또한 개혁과 진보를 지향하는 정책노선에 뭔가 손질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빌미가 되었다. 이때부터 노무현정부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적 노선 대신 대중추수적인 정치 노선을 취하는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포퓰리즘적 정책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실제 2003년 중반을 거치면서, 노무현정부는 정권초기의 ‘분배와 안정’에서 ‘성장과 개발’로 정책기조를 서서히 바꾸었다. ‘소득 2만 달러’로 상징되는 신(경제)성장주의 혹은 경제우선주의가 노무현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성향으로 드러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이 같은 정책성향은 1998년 경제위기 이후 밀려들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란 이념을 일정하게 추종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유시장 경쟁이념을 표방하는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지구화의 중심이념이기도 하다. 첨예해지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경제를 되살려 국민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노무현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기술혁신,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구조조정, 자본시장의 개방, 벤처산업육성 등과 같은 ‘경제 추스르기 최우선 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의 최대치’이기도 했다.

국책사업들이 당초 약속과 달리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경제 성장과 안정화, 그리고 지역개발 등을 선호하는 다수 국민들의 개발주의 욕구에 부응하는, 즉 대중추수적이고 인기영합적 입장을 드러낸 것이었다. 포퓰리즘이 신자유주의와 맞물리고, 국책사업의 재추진을 중심으로 참여정부의 성장정책들이 가동하면서, 과거의 개발주의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다시 말하자면, 참여정부 하에서 신자유주의가 포퓰리즘과 결합하면서 균형발전과 신성장을 내세운 채 국토환경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신개발주의(neo-development)’란 풍조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신개발주의는 60~70년대 국가가 주도적으로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가운데 풍미했던 개발주의에 조응되는 개념이다. 1990년대 들어 성장시대에 만들어졌던 개발기구나 정책(예, 경제기획원, 경제개발5개년 계획 등)은 폐기되고 경제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도 시장의 자율성으로 대체되는 추세에 따라 개발주의는 퇴색되는 듯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경쟁력을 우선하는 신경제 건설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신성장주의 혹은 경제지상주의가 등장했고, 이는 지구화의 물결을 타고 침투한 시장경쟁 이념인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신개발주의로 나타났다. 때문에 신개발주의는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라 할 수 있다.

신개발주의란 경향은 국책사업들이 포퓰리즘적 방식으로 추진하게 되면서 나타난 것이지만 노무현정부가 출범하면서 제시한 주요 국정과제들 속에서는 이미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었다. 가령, 국가균형발전, 신행정수도건설, 동북아경제중심 등과 같은 핵심국정과제들은 ‘국민적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 즉, 포퓰리즘적 방식으로 추진되면 하나같이 국토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줄 강한 개발주의 요소를 함축하고 있었다. ‘균형발전’ 과제는 지방별로 지역혁신역량을 도모하는 새로운 산업공간을 건설해야 하고, ‘신행정수도’ 과제는 국토의 중앙에 인구 50만이 사는 신도시를 조성해야 하며, ‘동북아경제중심’과제는 국제 비즈니스 활동을 집적시킬 개방형 경제특구를 국토의 여러 군데 개발해야 했다.

국책사업들이 당초의 약속과 달리 추진 결정을 보류하거나 재추진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 것은 국민들의 개발주의 정서에 영합하는 정책결정가들의 반환경적 정치관이 작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노무현정부는 초중반(대개 2003, 2004년)을 거치면서 기업도시특별법, 지역특화특구법, 골프장 240여개 동시인허가 검토, 경제자유구역법, 신수도권 관리방안, 혁신도시조성, 수도권 신도시건설, 그린벨트 내 국민임대주택건설 등 일련의 신개발주의 정책과 제도들을 양산했다. 국책사업의 재추진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신개발주의 정책들은 균형발전, 신성장동력 창출, 일자리 창출,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것으로, 국민의 강한 개발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임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정책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적 신개발주의 정책은 구개발주의 정책과 비교된다. 구개발주의 정책은 국가 혹은 정부의 통치적 관점을 반영한다면, 신개발주의 정책은 민주화와 더불어 점증한 국민들의 강한 개발욕구를 반영한다. 구개발주의 정책은 낙후지역의 개발이나 공공인프라의 건설과 같은 공익을 우선했다면, 신개발주의 정책은 토지의 저렴한 공급, 기술혁신, 경쟁력 강화와 같은 사익을 더 우월하게 반영한다. 구개발주의 정책은 국토환경을 물리적으로 개조하는 데 역점을 두지만, 신개발주의 정책은 국토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즉 ‘국토환경의 상품화’를 추구한다. 구개발주의 정책 하에서 환경문제는 대기오염, 수질오염 등과 같은 환경오염을 중심으로 하지만, 신개발주의 정책 하에서는 생물종이 사라지고 환경유해물질이 확산되면서 환경질환이 속출하는 등 생태계의 유기적 파괴를 중심으로 한다.

끝으로 구개발주의 정책은 중앙정부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신개발주의 정책은 지방자치의 확산과 더불어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다(예, 서울시의 청계천복원사업).

참고
www.seri.org 조명래(단국대 교수) '포퓰리즘과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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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궤변사이2008/06/20 14:15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페로니즘)

아르헨티나의 페론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정치행태를 말한다.‘민중주의'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민중을 위한다기보다는 ‘민중’을 빙자하거나 사칭한 엉터리 이데올로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을 주도하는 정치지도자들이 개혁을 내세우긴 하지만 권력을 획득하고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내세우는 허울좋은 슬로건에 불과하다. 원칙과 일관성이 없이 ‘정의’니 ‘제3의 길’이니 하며 화려한 수사(修辭)를 동원하므로. 정치적 편의주의, 기회주의적인 이데올르기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말, 그때까지 농산물 수출에 편중돼있던 무역이 냉장기술을 도입하며 육류의 수출로 확대되며 경제호황을 누리기 시작했고, 이러한 경제 활황을 누리기 위한 이민자가 늘어 1천5백만이던 인구도 1914년 8백만으로 증가했다. 이는 당시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폈던 호주와 캐나다와 비교할 때도 상당한 증가율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고의 부유국이었고,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지하철을 건설한 국가이기도 했다.아르헨티나로 몰려온 이민자들은 60%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꼬르도바, 로사리오 등 대도시에 몰려 상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정착했으나 나머지는 지방에서 농업에 종사했다. 당시 임금수준은 세계 최고인 미국과 독일과 비슷했으나, 미국과 독일이 공업분야에 치중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 높은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29년 세계 대공황을 맞으며 아르헨티나의 농축산물 대(對)수출국가가 사라졌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를 내수시장의 활성화로 풀려고 하며, 자유시장경제에 정부가 관여하기 시작했다. 1930년 중앙은행 설립과 함께 곡류와 육류의 시장가격에 관여하며 생산자에게 최저가를 보장해줬다. 이 과정에서 군부가 개입하기 시작했고, 군부는 석유와 철강산업, 해운업에서 통제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참여하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30년 이뽈리또 이리고젠 대통령에 항거하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로베르또 오르띠즈가 1938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후안 도밍고 페론은 육군 대령으로 쿠데타에 참여하여 한직인 노동부 장관과 국방부장관, 부통령직까지 겸임하고 있었다. 그는 급여의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 등으로 대체적으로 사회주의 성향을 띄고 있던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페론의 혁명적인 정책에 거부감을 느낀 반대파에 의해 투옥되지만,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등에 업고 석방, 라 보카 등 노동자 밀집거주지역의 대규모 지지에 힘입어 54%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조만이 아니라 산업가 세력도 페론을 지지했다. 이들은 페론이 전통적지배세력인 농업 세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할 것을 희망했다.

이후 1952년까지 첫임기 기간은 모든 면에서 아르헨티나 최고의 절정기였다.
페론은 1948년 연말상여금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새 노동법을 시행하며 노동자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당시 총재화의 50%를 노동자들이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현재는 25%정도이다.

페론은 이러한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정치를 정의주의(Justicialismo)로 포장하며 독재화를 가속 시켜 갔다. 정적에 대해 가혹한 정치적 탄압을 가했고 헌법을 개정하여 임기를 연장시켰다.
하지만 그와 퍼스트레이디였던 에바페론은 국민들의 눈앞에서는 누구보다도 국민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퍼포먼스적 감성정치 를 통하여 한편에서는 잔혹한 독재자란 비난과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의 은인이란 찬사를 함께 들어왔다.
하지만 페론의 장기독재는 군사쿠데타에 의해 종식되었고 아르헨티나의 경제 사정은 날로 악화되었다.


특징
(1) 지나친 인기 영합주의

산업화의 물결 속에 수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이었다. 이런 한계적 상황에 내몰린 처지에서 길게 볼 여유가 없었고, 사회를 합리적으로 개혁하는 일보다는 즉각적으로 실리를 얻는 것이 더 급했다.
(2) 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저소득 계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등 각종 물량공세를 폈다.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혜택을 보고자 했으므로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게 하는 것을 지향했다.

결과
(1) 국고 및 재정 압박
에바 페론은 손을 벌리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푼 결과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으나 지나친 분배위주의정책으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하고 실질임금의 저하를 가져왔다.
(2) 국민들의 반감 고취
정치인들로부터 기업인,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나라살림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 국민들의 반감을 이끌었으며,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세태를 초래하는 대 일조 했다.
(3)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의 악순환
퍼주기 정책으로 국고를 바닥내고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세태를 초래해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의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참고
http://www.udeca.net/ 한경연 월례 세미나 '페로니즘에 대해..'
http://sigma101.nazip.net/ 함께하는 사회문제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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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궤변사이2008/06/20 14:06

포퓰리즘 [populism]

대중주의라고도 하며, 인기영합주의·대중영합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일반 대중을 정치의 전면에 내세우고 동원시켜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소수의 지배집단이 통치하는 엘리트주의와 대립적인 의미이다.

포퓰리즘의 어원은 1891년 미국에서 결성된 파퓰리스트당(Populist Party), 즉 인민당(People's Party)에 기인한다. 파퓰리스트당은 당시 미국의 양대 정당으로서 1792년에 창당된 미국민주당(Democratic Party)과 1854년에 결성된 미국공화당(Republican Party)에 대항하기 위해 농민과 노조의 지지를 목표로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한 과격한 정책을 내세웠다.

통상 정치 지도자는 반대편 정치세력 또는 정치엘리트들의 저항에 직면할 때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그 대중적 지지를 권력유지의 기반으로 삼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대중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대표적 포퓰리즘이다.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실제로는 특정 지도자나 독재자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정치행태이다.

포퓰리즘의 근본 요소는 개혁을 내세우는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편의주의(便宜主義)나 기회주의(機會主義)이다. 예를 들면 선거를 치를 때 유권자들에게 경제논리에 어긋나는 선심 정책을 남발하는 일이 전형적이다.

포퓰리즘을 이끌어가는 정치 지도자들은 권력과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고 겉모양만 보기 좋은 개혁을 내세운다. 민중 또는 대중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인기 영합주의로 빠지기 쉽고, 합리적인 정치·사회 개혁보다 집권세력의 권력유지에 악용되기도 한다.

특권 엘리트 계층과의 투쟁에서 일반 대중의 힘과 권리를 대변하는 정치적인 독트린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포퓰리즘의 개념은 좌파와 우파 양쪽에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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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궤변사이2008/05/02 02:21

사람은 누군가를 부르고 또 누군가에게 불리운다.
못하는 영어지만 쓰다보니 어색해서 영어를 빌어 조금 표현하면-
man calls sb and be called.
by just name, family name, nick name, Mr or Ms sth, status, relations, and whatever.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발을 내딛은 곳은 아직 많진 않지만,
내 어린(한국 나이 스물 둘이면 사회에서 상당히 어린 나이다)
나이에 비해 position이 결코 낮지만은 않은 조직이었다.

내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에서 일을 하면
실무에서 가까이 일해보진 않았지만 사무국장님을 굉장히 좋아한 이유는 호칭에 관한 것이었다.
그 분은 자신보다 나이 어리고 특별한 직책(팀장)이 없는 이들을 이름으로 부르셨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로 "윤미야"로 불렸다.
처음엔 좀 깜짝 놀랐다. 그래도 일하는 곳인데 자기보다 낮은 사람이라고 이름을 막부르나 싶었는데,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크지도 않은 조직에서 친밀감과 소속감을 주었다.

평범하게 지낸다면 친구들 혹은 선후배와 만날 어린 나이지만,
나는 일이라는 것을 하면서 "윤미씨"라고 불리는 일이 많았다.
동아리에서 회장을 하면서 나이가 같거나 나보다 많은 후배들에게 윤미씨, 윤미선배로 불리었고 후엔 조직위원장이었다.
위자드웍스에서는 규모가 커가면서(작년 12월 대대적 채용이 있었던 시기로, 나는 이 때를 첫 공개/공식채용이라고 생각한다) 운영팀장이 되었고 나보다 많게는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분께 "윤미씨"라고 불리었다.
피판에서도 역시 대부분(나중에 친해진 분들은 윤미야로 편히 불러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윤미씨로 부르셨고, 나보다 나이 많은 자원활동가들 역시 윤미씨로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상황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도 제약이 많았고 나 역시 그 부분에 조금은 익숙해져서 쉽게 호칭을 바꿀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예전에 아일랜드에서 시연(김민정)이 강국(현빈)에게 했던 말 중에
"인간들 다 여우잖어, 비빌 구석은 본능으로 땡기나봐"라고 했던 것처럼 나도 용납이 되는 경우와 아닌 것 쯤은 구분 할 수 있어서 여자 선배들한테는 깍듯한 편이지만 남자 선배들에겐 좀 느슨하게 대한다.(그 정도가 좀 심하지만^0^;;)

같은 맥락에서 여자 선배들에게 살갑게 잘 하기 위해 "언니"하며 잘 따르는 편이다. 반대로 남자 선배들은 좀 편하고 여러가지 이유에서 특별히 미움이라는 것을 얻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냥 막 대할 때가 참 많다. 그래서 주위에 나로 부터 남자 선배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 이름을 막 불리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인용 비슷한 것을 붙이자면,
"남자들이 '오빠'라는 말에 죽는다"는 말들을 흔히 한다.
그래서 나는 "오빠"라는 말을 쉽게 쓰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장난삼아 "난 오빠답지 않은 사람한테 오빠라고 안해!"라고도 하고, "오빠가~"라며 본인 스스로를 지칭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편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해 나름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다양한 부연을 먼저 꺼냈다.(topic이 이제야 나오려고 한다;; 참 서두는 호칭에 대한 설명과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주는 친밀감 부분) 조직 내 나의 위치, 남자 선배들에 대한 호칭 사용, 단어 '오빠'에 대한 나의 견해가 그것이다.
따라서 내 주위엔 오빠이지만 내게 오빠로 불리지 않는 이들이 꽤나 많이 있는데, 이것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동문회 오빠들도 나이 차이와 친밀감의 정도를 떠나서 누구나 다 '오빠'가 되었는데 처음엔 그게 어려워서 '선배'했었는데, 워낙에 우리 동문회가 친한 분위기고 모두 '오빠'하고 불러서 금방 고치게 되었다. 그런데 반대로 격식있는 조직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 차이를 떠나서 참 '오빠'라는 호칭이 안나오고 여전히 '~씨'가 된다.

일하는 조직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조직에서 만난 사람들 보다 나이차가 적게 나도 뭔가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
위자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우, 나이차이가 두세살 밖에 안나는 데도 "~씨" 혹은 좀 친하고 재미있는 사람의 경우 반말과 함께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이 훨씬편하고 그들이 "오빠"가 되는 것이 별로 상상이 안된다.
피판의 경우 다들 너무 편한데도 나는 STAFF(영화제 직원)이었고 다른 분들은 VOLUNTEER(자원활동가)의 입장에서 만났기 때문에, 호칭을 바꾸는 것이 참 쉽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영화제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우리들의 만남에 있어서 우리의 position은 이전과 다른 것이다. 나는 이제 그들의 관리자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존칭을 들을 이유도 명분도 없고(굳이 명분을 찾고자 함이 결코 아닌 단순 상황 설명이다) 편하게 만날텐데 서로의 호칭을 바꾸는 게 참 쉽지 않다.
문득 내일(이제 오늘이 되어버렸지만) 친했던 사전자활 사람들과 모임이 있는데 우리의 관계의 변화(이렇게 쓰면 너무 그럴싸 하지만;;)에 따른 호칭과 존칭의 변화를 쉽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로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고칠 수 있을지, 그리고 나 외엔 서로 모두 편한 상태인데 내일 나 혼자 속으로 얼마나 난감해 하고 있을지-


2007.08.23


결국 소수의 몇몇 외에는 아직도 '윤미씨'라고 나를 부르며 존댓말로 대화한다.
내가 그 벽을 허물려고 노력했으나 반응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나조차 노력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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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궤변사이2008/04/26 01:49
싸이 ‘홈2’ 블로그로 확 바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사 뜬 줄도 모르고 있었넹 -_-;
확실히 IT 쪽에 관심이 줄었다. 하하

아무튼 싸이월드에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C2 프로젝트, 홈2가 결국 아무도(과장 많이해서) 안쓰더니 아예 블로그로 바뀐다. 창피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직 정식 오픈이 아니라서 그런건지 왜 싸이월드 내에서도 광고 혹은 공지가 없는지...
난 이걸 오랜만에 갔던 위자드닷컴에서 위자드 검색 뉴스에서 봤다.
그간 위자드에서 싸이월드랑 위젯 뭘 한다더니 블로그에 외부 위젯을 도입 할 수 있게 한단다.

쓰기 편하고 축적된 자료가 이미 어마어마하게 많아진, 그리고 그것들을 손쉽게 스크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네이버 블로그의 아성에 얼만큼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외부 위젯 지원이 가능한 오픈된 형태는 잘 한듯- 그런데 다른 기능들 ▷미니홈피 데이터의 마이그레이션 지원 ▷ 모바일 블로깅 지원 ▷ CCL 등 저작권 관련 기능 지원 ▷ 위자드닷컴의 위젯 등 외부 위젯 적극 도입 ▷무료 스킨 제공과 블로그 디자인 회원간 공유 등 뭐가 좋은지 모르겠고.... 어차피 다른 곳은 다 스킨 무료고 자기가 편집할 수 있고, 블로깅을 모바일로 할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적어도 블로그는 글을 꽤 길게 쓰게 되니까. 미니홈피 마이그레이션은 또 홈2 때 처럼 일주일 기다려야겠지? 후훗

솔직히 SK컴즈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글루스랑 엠파스 블로그에 싸이 블로그까지 세개를 따로 놀리는 건지도 모르겠고 외부 검색이나 RSS 리딩에 제대로 안되던 페이퍼와 비교해 얼마나 다른 강점이 있는 서비스를 내 놓을지 별로 감이 안온다. 미니홈피에서 썼던 BGM 아이템 등을 블로그에서도 그대로 쓸 수 있는 게 강점이 되려나? 괜히 홈2 되면서 새로운 이름의 홈을 여러개 가질 수 있어서 클럽에 깔끔하지 못하게 닉네임이나 남발되고 했는데 왠지 블로그에서도 그 점은 이어질 듯, 휴..

아무튼 싸이월드를 좋아하는 나로선, 아 아니다, 미니홈피와 싸이질을 좋아하는 나로선 나쁜지 않다. 어차피 안 쓸테니까 ;)

아무튼 SK컴즈에서 C2 프로젝트하면서 외부에서 유능한 인력도 많이 들이고 투자 많이 했다던데 게다가 이게 순수한 첫 생산물(?)이었고, 다른 건 거의 인수의 형태로 갖게 된 서비스들 이니까, 아무튼 이제 마이스페이스도 들어왔고 뭐 긴장 좀 타야했겠지...

아무튼 아무튼만 남발했는데 싸이월드엔 뭔게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한가보다.
근데 내 생각엔 미니홈피랑 클럽을 좀 더 잘 굴리는 게 좋을 듯 하다.
Posted by 캉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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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궤변사이2008/04/25 23:49
나는 통계치를 많이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통계가 신뢰도 90%이상을 내세우며 그 결과를 보여주지만 특정 집단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설문조사의 경우 그 모집단에 따라 답변의 차이가 확연할 것이다. 물론 모집단을 다양한 집단에서 추출하고 그 수도 충분히 많게 하겠지만 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신뢰도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또한 설문조사의 경우 그 질문 방법에 따라 답변이 결정될 수 있다.
원하는 답이 뻔히 보이는 질문이나 긍정하지 않기 어려운 질문이 있단 말이다. 지금 쉽게 예가 생각은 안나지만; 그런게 참 많다(아 나의 무식함ㅠ_ㅠ).
인적성검사를 할 때도 모호한 질문으로 B에 대해 긍정이 가지 않지만 A를 강하게 부정하므로 찍어야 되는 경우도 있고 지금 대충 가까이 있는 SSAT 책에서 하나 찾아보자면
A. 자신은 이유만 늘어놓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B. 자신은 활동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참나,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도 B를 찍게 되어있다. 게다가 이 것은 입사 시험 아닌가 -_-;;

또 비슷한 게 하나 생각났다. 심리테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질문으로
Q: 당신이 열중해서 일하고 있을 때 친구 찾아와서 말을 시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A①: 집중된 업무를 방해하므로 짜증이 난다.
A②: 잠시 휴식시간을 갖기,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도 아니,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라 급히 일하고 있고 마침 집중이 잘 된 상태라면 1번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더라도 2번을 찍을까 고민하게 된다. 게다가 심리테스트 목적이 <당신의 악마도 측정>과 같은식으로 나와있다면 신경써서 답을 고르게 되므로, 낮은 악마도가 나오길 원한다면 의식적으로 2번 답안을 찍게 된다.

경찰이 심문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 범죄를 저질렀습니까?"라고 물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 사람이 실제 범죄자라도 "아니오" "난 억울합니다" 끝까지 잡아 땔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범죄 저지른 것 맞잖아. 이미 목격자가 나왔어"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잡아 떼다가 시인하고 어떻게든 형량을 낮추려고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것이다. CSI를 보면 이런 것을 유도하는 질문을 자주 볼 수 있다.

오늘 여성병원에 갔었다.
산부인과와 거의 같은 병원이다. 스물 세살 한국 여성이 스스로 산부인과에 다녀왔다고 하면 놀랄 사람이 적잖게 많겠지만 질병 예방차원에서 병원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거나 작은 이상이 있을 때 일찍 찾아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 지향되어야 할 일이다. 어쨌든, 초진이라 접수를 하고 상담을 받고 의사를 배정받아 진료를 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상담을 하면서 간호사(maybe)가 이것 저것 물었다.
어떤 이유로 방문했는지, 처음인지, 알러지나 최근 외과 수술한 것이 있는지, 최근 월경일과 주기가 규칙적인지,
그리고 성관계 경험을 물었다.
그런데 답할 때 잠시 한 0.5초 쯤 지체했다. 그 질문은 내가 생각했던 꽉 막힌 사회 통념에서부터 내원 환자를 보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 만으로 스물 하나인 미혼에 산부인과에 처음 방문하는 나에게
"관계 경험 있으세요?" "경험 없으시죠?" 가 아니라
"관계 경험 있으시죠?" 였다.

최근에는 성관계에 대한 의식이 그나마 좀 오픈된 편이기도 하고 연령층도 어려지고 있고 게다가 그 곳은 흔히 생각하기에 경험자가 많이 찾을 법한 '산부인과'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내가 느낄 때 그 미묘한 질문의 어감 차이는 환자를 존중하고 솔직한 답을 유도할 수 있었다.
"경험 없으시죠?"라고 질문을 했는데 만약 경험이 있다면, "아니요"라는 답을 하면서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고 진료에 별 지장 없겠지 하고 그냥 "네"하고 넘어가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난 이 쪽 지식은 없지만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질문에 내포된 긍/부정적 의미가 답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오늘 또 다시 확인하면서 말의 조심성과 중립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여성병원에 가보는 새로운 경험도 해봤고. 다행이 몸에 아무 이상도 없었고 내시경도 한 번 안해봤는데 초음파라는 신기한 것도 해봤고 기념으로 사진도 받아왔다. 진료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배려받은 느낌이 참 좋았다. 요즘은 정말 병원도 서비스를 중시하니 좋다. 아무튼 6개월 후에 또 검진 받으러 가야겠다.ㅎㅎ

Posted by 캉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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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읽고 있으니 어째 저도 함 다녀와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ㅡㅡ;; 그르나 게을러 터져서;; 음냐;;

    2008/04/26 10:32 [ ADDR : EDIT/ DEL : REPLY ]
    • 왠지 다녀오니까 괜히 건강한 느낌이 들어요 푸후흡;;;

      2008/04/27 01:29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 입니다

    2008/04/28 13:26 [ ADDR : EDIT/ DEL : REPLY ]
  3. 바람직하시네요. 제가 어렸을땐 왠지 두려움에 발길을 하기 어려웠는데, 요새 병원도 그 말한마디 뉘앙스하나 섬세하게 배려해야한다고 할까요?? 여튼 다녀온 후 건강해진 느낌이라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2008/04/28 19:22 [ ADDR : EDIT/ DEL : REPLY ]

논리와궤변사이2008/04/23 23:59

9일 미국 듀크대에서 열린 친/반 중국 시위 현장에서 중국인 유학생 왕첸위안이 티베트를 지지해 주목받았다.
그 주목의 정도는 대단하다. 애국주의(중화사상 아니구?) 열풍이 거센 모국에서는 민족반역자로 낙인 찍혔다. 관영 중국 중앙방송(CCTV)는 '가장 추악한 유학생'이라 칭했으며 네티즌은 그의 고향 주소, 신분증 번호, 분모의 이름, 출신고교 등의 신상정보를 낱낱이 올렸다. 신상을 위협하는 글이 난무하고 부모의 집에는 인분까지 뿌려졌다고 한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20일 워싱턴포스트에 '나의 중국 나의 티베트, 반역자라는 이름으로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한 채'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MY CHINA, MY TIBET
Caught in the Middle, Called a Traitor (원문보기)


원래 쓰고자 했던 글은 20살인 이 유학생이 민족의 거센 비난을 예상했을텐데 자신의 나라를 비판할 수 있었는지 그 용기 대한 내용이었다. 나부터도 현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 등록금인상, 학생자치공간 부족, 택시정차 요금 인상, 음식 배달 제한 등등 학생 복지 사안에 대해 할 말이 많아도 일선에서 (학생들의 행동에 고개 까딱 안하는)학교를 향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하자고 나설 자신이 없다. 학생회에서, 운동권 학생들이 한다면 지지해줄 의향은 있지만 선봉하기는 어렵고 또한 교내에서는 학교를 마음껏 씹겠지만, 학교 밖에서는 그래도 내 학교이기 때문에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중국 대학생의 용기와 살아있는 지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서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Grace, Wang이 WP에 기고한 원문은(글은 길고 내 영어는 짧아) 다 읽지 않고 281개 달리 코멘트를 읽고있는데 조금 의구심 가졌던 부분을 언급한 글이 보였다.
결국 그의 주장은, "티베트의 독립을 반대하지만 티베트의 자유는 지지한다. 중국인들이 누리는 자유를 티베트인들도 누려야 한다. 언어를 통해 서로 소통하며 원만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결론은 "티베트의 독립은 반대한다." 고양이가 쥐 생각 해준 것이었다.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던 사람이 수많은 민족의 비난에 못이겨 주장을 약간 비튼 것인지, 원래 본질은 못보고 방법론만 중요시 하는 고리타분한 지식인이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용기는 높이 살만 하다.

Posted by 캉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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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쩝. 진짜 고양이 쥐 생각해준 거였군요. -_-;;; 그랬는데 중국인들이 그 ㅈㄹ을 했다는 거군여. 쩝;;;

    2008/04/25 09:39 [ ADDR : EDIT/ DEL : REPLY ]
    • 고상한척 결국은 제국주의 성향을 담고 있던 왕양이나 앞뒤 없이 또 상욕 퍼부은 중국인들이나 다 ㅉㅉ이죠

      2008/04/26 00:55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