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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0 Don't Cry For Me Argentina [페로니즘]
논리와궤변사이2008/06/20 14:15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페로니즘)

아르헨티나의 페론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정치행태를 말한다.‘민중주의'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민중을 위한다기보다는 ‘민중’을 빙자하거나 사칭한 엉터리 이데올로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을 주도하는 정치지도자들이 개혁을 내세우긴 하지만 권력을 획득하고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내세우는 허울좋은 슬로건에 불과하다. 원칙과 일관성이 없이 ‘정의’니 ‘제3의 길’이니 하며 화려한 수사(修辭)를 동원하므로. 정치적 편의주의, 기회주의적인 이데올르기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말, 그때까지 농산물 수출에 편중돼있던 무역이 냉장기술을 도입하며 육류의 수출로 확대되며 경제호황을 누리기 시작했고, 이러한 경제 활황을 누리기 위한 이민자가 늘어 1천5백만이던 인구도 1914년 8백만으로 증가했다. 이는 당시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폈던 호주와 캐나다와 비교할 때도 상당한 증가율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고의 부유국이었고,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지하철을 건설한 국가이기도 했다.아르헨티나로 몰려온 이민자들은 60%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꼬르도바, 로사리오 등 대도시에 몰려 상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정착했으나 나머지는 지방에서 농업에 종사했다. 당시 임금수준은 세계 최고인 미국과 독일과 비슷했으나, 미국과 독일이 공업분야에 치중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 높은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29년 세계 대공황을 맞으며 아르헨티나의 농축산물 대(對)수출국가가 사라졌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를 내수시장의 활성화로 풀려고 하며, 자유시장경제에 정부가 관여하기 시작했다. 1930년 중앙은행 설립과 함께 곡류와 육류의 시장가격에 관여하며 생산자에게 최저가를 보장해줬다. 이 과정에서 군부가 개입하기 시작했고, 군부는 석유와 철강산업, 해운업에서 통제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참여하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30년 이뽈리또 이리고젠 대통령에 항거하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로베르또 오르띠즈가 1938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후안 도밍고 페론은 육군 대령으로 쿠데타에 참여하여 한직인 노동부 장관과 국방부장관, 부통령직까지 겸임하고 있었다. 그는 급여의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 등으로 대체적으로 사회주의 성향을 띄고 있던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페론의 혁명적인 정책에 거부감을 느낀 반대파에 의해 투옥되지만,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등에 업고 석방, 라 보카 등 노동자 밀집거주지역의 대규모 지지에 힘입어 54%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조만이 아니라 산업가 세력도 페론을 지지했다. 이들은 페론이 전통적지배세력인 농업 세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할 것을 희망했다.

이후 1952년까지 첫임기 기간은 모든 면에서 아르헨티나 최고의 절정기였다.
페론은 1948년 연말상여금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새 노동법을 시행하며 노동자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당시 총재화의 50%를 노동자들이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현재는 25%정도이다.

페론은 이러한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정치를 정의주의(Justicialismo)로 포장하며 독재화를 가속 시켜 갔다. 정적에 대해 가혹한 정치적 탄압을 가했고 헌법을 개정하여 임기를 연장시켰다.
하지만 그와 퍼스트레이디였던 에바페론은 국민들의 눈앞에서는 누구보다도 국민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퍼포먼스적 감성정치 를 통하여 한편에서는 잔혹한 독재자란 비난과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의 은인이란 찬사를 함께 들어왔다.
하지만 페론의 장기독재는 군사쿠데타에 의해 종식되었고 아르헨티나의 경제 사정은 날로 악화되었다.


특징
(1) 지나친 인기 영합주의

산업화의 물결 속에 수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이었다. 이런 한계적 상황에 내몰린 처지에서 길게 볼 여유가 없었고, 사회를 합리적으로 개혁하는 일보다는 즉각적으로 실리를 얻는 것이 더 급했다.
(2) 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저소득 계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등 각종 물량공세를 폈다.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혜택을 보고자 했으므로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게 하는 것을 지향했다.

결과
(1) 국고 및 재정 압박
에바 페론은 손을 벌리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푼 결과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으나 지나친 분배위주의정책으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하고 실질임금의 저하를 가져왔다.
(2) 국민들의 반감 고취
정치인들로부터 기업인,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나라살림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 국민들의 반감을 이끌었으며,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세태를 초래하는 대 일조 했다.
(3)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의 악순환
퍼주기 정책으로 국고를 바닥내고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세태를 초래해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의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참고
http://www.udeca.net/ 한경연 월례 세미나 '페로니즘에 대해..'
http://sigma101.nazip.net/ 함께하는 사회문제 '포퓰리즘'

Posted by 캉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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